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타르 3세 (문단 편집) === 슈타우펜과의 분쟁 === 로타르 3세의 치세 동안, [[벨프 가]]와 [[프리드리히 2세]]와 그의 동생 [[프랑켄]] [[공작(작위)|공작]] 콘라트가 이끄는 [[슈타우펜 가]] 사이에 승계권 분쟁이 벌어졌다. 슈타우펜 가는 잘리어 가의 사유지와 [[하인리히 4세]]와 [[하인리히 5세]]가 소유했던 왕실 영토를 요구했다. 레겐스부르크에서 회의를 열어 귀족들의 인정을 받아 왕실 영토를 차지하려는 로타르의 시도는 슈타우펜 집안의 반발을 불러왔다. 슈바벤의 프리드리히 2세는 제국 파면의 벌을 받았고 콘라트는 프랑켄을 빼앗겼다. 그리고 브루고뉴의 관리자는 취링겐 가문의 콘라트에게 전해졌다. 슈타우펜 가는 많은 제국 도시들과 [[오스트리아]], [[슈바벤]] 공작령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로타르에 대항하여 [[콘라트 3세]]를 대립왕으로 선출했다. 1128년에 콘라트 3세는 밀라노 대주교에게 왕관을 받아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 로타르는 콘라트가 이탈리아로 떠난 것과 자원이 부족한 것을 이용하여 슈타우펜 가를 공격했다. 반대편에 서서 지원하던 강력한 두 도시 뉘른베르크와 슈파이어가 1129년에 함락당했다. 콘라트는 이탈리아에서 아무런 전공도 세우지 못해 실패했고 1130년에 아무런 소득없이 돌아와 로타르 3세가 승리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